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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을 잃게 만드는 하하의 과거, 그리고 그의 인생

세상 온갖 잡지식 2022. 10.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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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모든 것

 

 

어릴 적 모범생이었던 하하

 

하하는 독일에서 4.9kg의 우량아로 태어났다.(평균 아이가 3.3kg라고 함)

당시 이 사건은 독일 신문에서도 실릴정도였고 이를 본 어머니는 하하가 거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하가 3살일 때 모든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독일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던 어머니 덕에 하하는 어릴 때부터 클래식을 조기교육받아 누나와 함께 바이올린과 첼로를 연주했다. 뿐만아니라 어머니는 남매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 클래식 이외에도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조력했다. 그래서인지 하하는 초등학교 때 성적이 매우 좋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수학의 정석으로 중학교 과정을 예습할 정도였고, 시험을 볼 땐 하나만 틀려도 울 정도로 열심이었다.

 

 

갈수록 삐뚤어져가는 학창시절과 음반 사기

 

어릴 때 너무 많은 일을 해서일까, 중학교에 들어가자 하하는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다. 그에 반해 그의 누나는 전교 회장에 전교 1등, 피아노까지 잘치니 갈수록 하하는 위축됐다. 하하의 어머니는 그런 모습을 보고는 "네 길이 따로 있나보다"라며 항상 그를 응원했지만 어린 하하에게 있어 이러한 관심은 사람이 아닌 부담으로 다가왔다. 내버려두길 원하는 자식과 자신을 자꾸 도와주려는 어머니간의 간격은 깊었고 고등학생이 되자 학교도 제대로 나가지 않을 정도로 삐뚤어지기 시작한다.

 

그는 스스로의 용돈을 벌기 위해 짝퉁 물건을 이태원에서 팔고 다녔다. 이태원은 당시 힙합의 중심지이기도 했기에 자연스레 힙합을 접한 그는 힙합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된다. 어머니는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하하의 말에 여러 기획사에 연락을 돌렸고 한 기획사와 연결되게 된다. 그곳에서는 앨범 제작을 위한 돈을 요구했고 아들을 위해 돈을 구해왔지만 그것은 사기였다.

 

어머님은 이 일로 직접 기획사를 차리게 된다. 자신의 이름이었던 옥정의 이니셜을 따 OJ기획사를 설립하고 음악프로, Mnet에 전화를 걸어 장비를 빌려가며 뮤비를 촬영하고 직접 감독까지 했다. 이후에는 버클리 음대에서 진학하는 누나까지 작사와 작곡을 도왔다.

음반을 낸 후 어머님은 이곳저곳 방송국을 다니며 홍보했고 하하의 뮤비는 한 때 엠넷에서 하루에 12번씩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하는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고 잠시 동안 가수의 꿈을 접게 된다.

 

 

성인이 된 하하

 

당시 어머니는 그가 대학만큼은 가기를 원했고, 하하는 그렇게 대학입시를 준비하게 된다.

다만, 그는 공부도 예술도 특출나게 잘하지 못하였고, 어떻게 대학을 들어갈지 궁리하다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남들을 웃기는 것만큼은 잘했다라고 생각하고 6개월간 연기학원에서 연기를 배워 연극 영화과에 입학한다.

 

그는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도 힙합을 계속하고 싶었고, 2명의 인원을 모아 지키리라는 그룹을 만들어 2년간 준비해 1집을 발매한다. 하지만 당시 사회적 문제였던 청소년 범죄, 성범죄 등 90년대 일어났던 충격적인 일들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가사때문에 19세 미만 청취불가 판정을 받고 앨범발매조차 못하게 된다.

 

하하는 포기하지 않고 지키리를 홍보하러 여러 방송국을 오갔고 한 음악방송피디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며 "What's up yo!"(2001)라는 음악 프로그램의 MC로 활동하게 된다. 그는 이담해 "논스톱3"(2002)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처음 얻고 연이어 "장미의 전쟁"(2003)이라는 인기 소개팅 프로그램까지 출연하며 엄청난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데뷔 2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내 성공은 오히려 독이 되었고 본인의 인기가 당연하다고 자만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촬영을 같이하던 동료들은 성장하고 앞서나가는데 제자리걸음이었던 자신을 보고는 방송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반항심과 패배주의로 찌들어 1년 6개월간 폐인처럼 살게 된다.

종종 방송 섭외 문의도 왔지만 방황이 너무 길었던 탓인가 방송을 나가려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하는 인생을 바꿔줄 두번째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인생의 터닝포인트

 

친구들과 술을 먹고 돌아가다가 유재석을 만나게 된다. 당시, 유재석은 수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인기 연예인이었고 하하는 그를 직접 만난 것이 처음이었다. 유재석은 방송을 통해 하하를 이미 알고 있던 것인지 하하의 이름을 친근하게 불렀고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인기MC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는 사실과 몇 마디의 응원을 받은 하하는 큰 감동을 받고 다시 방송을 시작한다.

 

하하는 이후 "X맨"(2005)에 출연하고 같은 해 12월 무한도전까지 합류한다. 다만, 술을 너무 좋아했던 나머지 과음으로 무한도전 녹화에 지각을 하는 일이 잦아 자주 문제를 일으켰고 크리스마스 전날에는 무려 한시간이나 지각한다. 유재석은 그랬던 하하를 잡아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며 지속적으로 하하를 잡아주었고 과음하는 습관을 고치게 해주었다. 그렇기에 하하가 유재석을 지금까지 끔찍하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하는 그렇게 2006년 MBC 연예 우수상을 받고, 2007년에는 멤버들과 연예 대상까지 받게 된다. 흐름을 탄걸까? "너는 내 운명"이라는 곡으로 다시 한번 가수에 도전한 그는 2008년 KBS 뮤직뱅크에서 1위를 하는 쾌거를 달성한다.

많은 업적을 이루고 나이가 찬 그는 천식으로 공익 군 입대를 했고 2년 후 방송에 복귀한다.

 

 

다시 찾아온 슬럼프

 

2년간 너무나 많이 바뀌어버린 방송 스타일로 무한도전에 복귀한 그는 잘 적응하지 못했고, 당시 가장 인기였던 무한도전에서의 이러한 모습 많은 비난을 이끌어냈다. "나는 이제 방송계에 필요한 존재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며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이를 본 유재석은 "뭐라도 해, 형이 다 받아줄게. 던져, 극복해야 해."라고 격려했고, 하하는 이후 자존심이 상하면 상한다고 못하면 못하겠다고 감정을 숨기지않고 모두 표현하게 됐다. 그렇게 기존의 예능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철없는 캐릭터"로 슬럼프를 극복했고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하게 해준 "런닝맨"(2010)에 출연한다.

 

모든 슬럼프를 극복한 하하는 엄청난 기량을 선보였고 하로로라는 캐릭터로 한국을 넘어서 한류 스타로 거듭난다.

 

 

하하의 방송 외적인 모습

 

그는 친구들과 "401 정육 식당"(2011)을 개업한다. 계기는 가장 친한 친구 두명의 사고때문이었다.

 

그의 친구인 박근식이 하하의 생일날,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불법유턴하는 차량에 의해 사고가 나 고관절이 모두 으스러지고 18개월간 누워있게 된

다. 영화배우를 오랜 기간 준비하던 그였기에 참으로 암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 또 다른 친구 김상균은 골프선수였는데 사고로 어깨뼈와 팔꿈치가 으스러져 꿈을 잃게 된다.

이후 이 셋은 2년간 한 집(401호)에 살며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고민했고 결국, 모든 사람이 뜯어말리는 친구와의 동업을 시작하게 된다. 김종국, 유재석, 강호동을 포함한 모든 지인들이 이 결정을 말렸지만 하하는 "우리만큼은 다를 것이다"라며 강행했고 큰 성공을 이룬다.

 

이후 김종국은 이를 보고 "친구랑 동업을 한다면 하하처럼 해야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하하의 결혼이야기

 

하하는 2012년 가수 별과의 결혼을 발표한다. 연애 7개월만에 한 혼인신고에 속도위반이 아니냐는 말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내막은 그렇지 않았다.

 

별은 20살에 데뷔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데뷔를 앞두고 발생한 의료사고로 11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병상에 누워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그녀는 20살부터 한 집안의 가장 역할과 병간호를 해오고 있던 것이었다. 아버지의 병간호와 의료소송 등으로 누구보다 힘든 상황에서도 항상 밝은 모습을 유지하던 그녀를 본 하하는 "만약 내가 결혼을 하면 이런 여자랑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의 건강이 갑작스레 악화되기 시작하자, 하하는 급하게 혼인신고를 먼저 한다. 혼인 신고에는 병상에 계시는 아버지와 아내를 향한 하하의 깊은 생각이 담겨있었다. 2012/10/14 하하와 별은 미니 결혼식을 올렸고 그 다음 날 아버지는 돌아가신다.

장례식 때는 법적으로 하하가 남편이었기에 상주자격으로 3일내내 별과 자리를 함께한다. 하하는 방송에서는 철없는 이미지이지만 본인의 인생에 대해서는 매우 진지한 모습을 보인다.

 

이외에도 그는 유튜브 채널, 소속사, 콴리티라는 패션 브랜드까지 운영하고도 3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별이 아이를 3명이나 낳고도 4명째는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하는지를 보면 그가 바쁘게 활동하면서도 집에서 얼마나 좋은 남편과 아빠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같다.

 

 

 

유튜브 댓글

 

어머니가 진짜 대단하시다ㅠㅠ 지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ㅠㅠ

 

유느님 파도파도 미담... 그런데 저는 하하형 너무 멋지다 생각해요.. 무도에서 알게되서 부터 한 번도 싫어해본적 없는 연예인... 유튜브에서도 약속한 것 또한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진정 될사람이라 느꼈음..

 

코멘트: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주변사람의 영향이 크다. 그리고 이걸 보고는 그래도 돈 걱정이 없었기에 이렇게 성공이 가능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이미 그 생각부터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수 없다. 지금 내가 가진 것에서 최선을 다해야지 남은 이랬으니 성공했어라고 비교하면 언제나 그곳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TnE0sGHUqNM&list=LL&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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