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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존재감이었던 조선 왕비

동영상(지식정보 전달)/교양만두

by 세상 온갖 잡지식 2022. 4. 2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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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만두

 

 공주에 비해 왕비는 존재감도 없고 하는 일도 별로 없어보인다. 그리고 드라마에서는 맨날 후궁들에게 밀려서 주인공 한 번 못해본 비운의 캐릭터이다. 그럼 실제 역사 속에서도 왕비들은 있으나 마나한 병풍캐였을까?

 

 

 

 

왕비가 되려면?

 

 

 왕비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세자빈이 되어야했다. 세자빈은 10세 전후에 간택 제도를 통해 뽑혔다. 왕자님과 결혼가리르 꿈꾸는 수많은 소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을 것 같지만, 사실 전국에서 들어오는 간택단자는 꼴랑 25~30명정도였다.

 

 

 양반들은 자신의 딸이 세자빈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딸이 왕비가 되면 집안 전체가 정치권의 극심한 견제를 받아야했고 최종 면접까지 갔다가 떨어졌다면 그 딸은 평생 결혼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간택심사는 미리 내정자를 정해놓고 형식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된 입장으로 딸이 들러리만 서다가 인생 망치는 꼴을 보고 있을 순 없었다. 때문에 간택을 위해 금혼령이 떨어지면 딸이 시집갈 나이가 아니라고 속이거나 몰래 결혼을 시켜 유부녀로 만들곤 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세자빈이 그대로 왕비가 된 경우는 6명 밖에 되지 않는다. 세자가 일찍 죽거나 심지어는 다른 아들로 세자로 바뀌어버리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이다.(Ex. 사도세자) 양녕대군이 세자였을때 세자빈은 남편이 궁에서 쫓겨나면서 대군부인으로 강등되었다.

 

 왕비가 되는 두번째 방법은 후궁에서 왕비로 레벨업하는 경우이다. 숙종 초반까지만 해도 왕비가 죽거나 폐비가 되는 경우 기존 후궁 중 한명을 왕비로 승진시키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 유명한 장희빈에게 달달 볶였던 바람둥이 숙종은 황비 자리를 스틸하려는 후궁에게 질려버려서 후궁이 더 이상 왕비에 오르지 못하는 법을 만들었다.

 

 

 

 

왕비가 하는 일

 

 왕비의 거처인 교태전은 경복궁의 중앙에 위치했다. 때문에 왕비가 있는 곳을 중궁전이라고 불렀고 왕비를 중전마마라고 불렀다. 왕비가 되면 내명부, 외명부의 수장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된다.

 

 내명부란 궁에 사는 모든 여성들로 왕과 세자의 후궁부터 이들을 모시는 궁녀까지 모두 합친 조직이었다.

 

 외명부는 공주, 옹주를 비롯한 종친 및 사대부의 정실부인들을 모은 집단이었다. 이들은 품계에 따라서 엄격한 위계질서가 있었다.

 

 

 그 중 왕비는 품계가 제로단계인 최상위 티어로 내외명부의 인원들이 하극상을 벌이지 않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관리, 감독하는 일을 하였다.

 

 특히 세종대왕의 왕비인 소헌왕후 심씨는 내명부를 완전히 장악하여 궁중암투의 싹을 잘라버린 인물로 유명하다. 그녀는 후궁을 질투하지 않았고 세종이 예뻐하는 후궁일수록 특별히 잘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낳은 아이까지 후궁이 양육하게 허락하면서 역대급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수양대군).

 

 반대로 며느리들이 궁중 법도를 지키지 않을 때에는 피도 눈물도 없이 내쫓았다.

 

 

 첫번째 며느리는 세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뱀의 정액가루가 담긴 주머니를 차고 다니다가 퇴출당했고, 두번째 세자빈은 동성애 성향이 있다는 이유로 궁에서 퇴출당했다.

 

 

 

 

과로에 시달리는 왕비

 

 이씨 왕조의 맏며느리였던 조선의 왕비는 매년 50회가 넘는 국가 제사와 잔치를 직접 주관해야했다. 특히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푸는 회례연, 80세 이상 노인 200명을 초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는 양로연, 누에를 치는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내외명부 여인들과 함께 뽕잎을 따는 침잠례 등 국가 행사를 직접 주관하느라 1년내내 과로에 시달려야했다.

 

 

 

왕비의 가장 큰 임무

 

 왕비의 가장 큰 임무는 세자를 생산하여 왕조의 대를 잇는 일이었다. 만화나 드라마에서는 왕과 왕비가 밤 산책길에 우연히 만나 뜨밤을 보내기도 하나, 이 커플들은 사실 정해진 날짜에만 함께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이 합궁 날짜는 상궁 중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제조 상궁과 지금의 기상청인 관상감이 함께 정했다.

 

 왕비의 월경이 끝난 후 닷새째가 가장 좋은 날이나, 그믐이나 보름은 안됐다. 그리고 60간지를 날짜에 붙였을 때 뱀이나 호랑이가 들어가는 날도 안됐다. 비, 천둥, 번개가 치는 날 또한 안됐다. 뿐만 아니라 일식, 월식, 나라의 제사가 있는 날도 안됐고 왕비가 아프거나 아프고 난 직후도 안됐다.

 

대체 언제하라는거야

 

 

 심지어 어렵게 날짜가 정해져도 제조 상궁의 감독 하에 합궁을 해야했다. 왕이 왕비의 숙소인 교태전으로 건너가면 우물정 모양의 9개 방 중 가운데에서 거사가 치뤄졌다.

 
 
  그리고 이 방은 8명의 숙직 상궁들이 둘러싸고 지켰다.

 

안해

 

 이때 상궁들은 살아있는 닭을 들고 대기했다. 왕이 복상사할 것같으면 즉석에서 닭 모가지를 따고 그 피를 먹여 응급조치를 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금지사항들에 비해서 후궁과의 합궁은 비교적 덜 까다로웠고, 후궁이 왕에게 더 사랑받는 일이 흔할 수 밖에 없었다.

 

 

 

 

후궁보다 왕비를 더 절절하게 사랑한 왕

 

 반정을 통해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중종은 7일만에 자신이 사랑하는 왕비를 폐위했다. 왕비였던 단경왕후의 아버지가 연산군의 처남이란 이유로 반정세력이 폐위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왕비를 내쳤고, 왕비를 그리워하며 시름시름 앓았다. 그 마음을 알게 된 단경왕후는 중종이 알아볼 수 있도록 집 근처 인왕산 자락에 붉은 치마를 걸쳐놓았다. 이것이 유명한 인왕산 치마바위 이야기이다.

 

 

 

대비가 되면 오히려 강해진다

 

 대비가 되면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왕비의 정치적 파워는 이때가 가장 쌨다. 왕이 죽거나 정변이 일어나면 옥새는 임시적으로 대비의 소유가 됐다. 정변에 성공하더라도 옥쇄를 대비에게 먼저 주고, 승인을 받아야만 왕이 될 수 있었다. 어린 왕을 대신했던 대비의 수렴청정, 조선의 1/8기간이 수렴청정 기간이었다.(정희왕후 윤씨, 문정왕후 윤씨, 인순왕후 심씨, 정순왕후 김씨, 순원왕후 김씨, 신청왕후 조씨)

 

 그렇게 꼰대가 넘쳤던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여성인 왕비가 수렴청정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자가 왕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왕이 될 수 없는 여성이 어린 왕을 보호하고, 조력하게 함으로써 왕위 찬탈과 역성혁명을 방지하도록 한 것이다.

 

 

 

유튜브 댓글

 

이거 보니까 세종대왕의 부인 소헌왕후가 대단하네... 적통 왕자 8명을 낳았고, 세종이 한양을 비웠을 때 발생한 대화재 사고도 진두지휘해서 진압하고... ㅎㄷㄷ

 

왕비,,,진짜,,,제일 높은여성지만 제일 고단한 여성이네요,,

 

채널 운영자님 중종 이야기도, 숙종 이야기도 옛날에 전해듣던 이야기이지만 다시 사실관계 확인한 결과 말씀하신 내용관 달랐던 걸로 밝혀졌어요..요즘 좋은 역사컨텐츠 참 많은데 옛날에나 돌던 단편적인 이야기들로만 이런 좋은 영상을 제작하실 게 아니라 좋은 자료로 공부를 좀 더 하시고 만드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ㅠㅠ 저는 7일의왕비 드라마 보고 한창 그 시대에 빠져들어 역사 찾아보았는데, 중종이 단경왕후를 그리워했을 수는 있으나 (말씀하신 내용이 틀렸단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두 왕비를 더 들이고 후궁들도 거느리면서 잘 산 것으로 보인 점을 짚어주셨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중종의 형이자 폐위된 직전 왕인 연산군도 단경왕후 고모인 폐비 신씨를 아껴서 계모인 대비에게 난동부리러 가다가 신씨가 막아선 걸 보고 그대로 행동을 멈추고 돌아섰다고 합니다. 연산군이 결국 폐위될 정도로 폭정을 저질렀지만, 연산군의 정비는 '성품이 어질다'고 알려졌고 계파 상관없이 모든 신하들이 칭찬한 인물이었던 만큼, 아마 나서서 연산군을 말리고 통제만 했다면 훌륭한 시대를 이끌었을지도요. 그렇게 잔인하게 신하와 백성을 대하던 연산군이 신씨에겐 달랐고, 폐위된 뒤 죽기 전에 신씨가 보고싶다고 했고. 숙종도 옛날에나 '휘둘렸다'고 했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좀 더 날카롭고 입체적이 된 요즘은 '숙종이 모두를 휘둘렀다'고 해요... 여기 댓글에도 많은 분들이 적어 주셨기에 이건 길게 적지 않을게요...

 

코멘트: 왕비가 행복할 수 가 있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42FKXWJg46U

 

 

#교양만두

#조선시대

#왕비

#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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