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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미워하도록 태어났다? | 나도 무의식적인 편견이 있을까? | 혐오, 혐오범죄

동영상(지식정보 전달)/지식은 날리지

by 세상 온갖 잡지식 2023. 10. 5.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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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날리지

 

 

로버스 케이브 실험

무자퍼 셰리프

 1954년에 백인 미국인 소년들을 참가시킨 여름 캠프를 통한 실험이 있었다. 그들은 나무를 베고 뗏목을 만드는 과제 등을 하며 서로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중 몇몇이 자신들이 방울뱀 부족이라며 자신들의 구역을 주장했고, 그전에 독수리 부족이라며 집단을 이룬 다른 그룹과 갈등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들에게는 텐트 세우기 등의 경쟁 과제가 주어졌고, 독수리 부족 집단이 방울뱀 부족의 깃발을 끌어내려 태우는 것으로 시작해, 진짜 주먹다짐까지 이어졌다.

 

 두 집단은 완벽히 동일한 조건의 인종 집단이었음에도 서로 간 독특한 정체성을 키워가며 서로를 미워했다.

 

 

혐오로 가득한 현실

 현실도 나치의 인종청소, 혐오 범죄, 남녀 갈등 등 각종 혐오와 폭력으로 가득하다. 무자퍼 셰리퍼는 혐오가 자원 부족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자원이 풍족하다면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혐오와 편 가르기의 극단적 형태인 혐오 범죄는 일반적으로 범죄의 주원인이 피해자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 범죄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것을 판단하기 위해 범죄자 내면의 범행 동기, 과거 발언, 인터넷 활동 기록 등 간접적인 정황증거로만 파악할 수밖에 없어진다.

 

 하지만 이는 결국 정황에 불과하기에 그것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모든 사람들은 편견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 범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대부분은 그것을 의식조차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무슨 혐오를 가지고 있는가?

 

 IAT(Implicit Association Test), 내재적 연관 검사라는 것이 있다. 참가자는 여러 사진과 단어들을 보고 규칙에 따라 좌, 우로 최대한 빠르게 분류해야 한다.

 

 처음에는 흑인과 부정적 단어를 왼쪽, 백인과 긍정적 단어를 오른쪽으로 두고, 그다음에는 백인과 부정적 단어를 오른쪽에 분류해놓는 식이다. 결국에는 모순적인 경험을 하게 만든다.

 

 이 테스트의 주요한 점은 두 번째 분류에서 뇌는 편견으로부터 벗어난 단어와 사진의 조합에 흠칫하고 편견이 더 강할수록 분류 시간이 길어지기에 그것을 체크하는 것이다.

 

 

혐오를 조장하는 뇌, 편도체

 

 이 현상은 편도체와 관련이 깊다. 우리 몸의 각종 감정 중 주로 공포를 담당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리를 이뤄 대형동물을 사냥해 고기를 '나눠'먹었다.

 

 마치 사냥에 실패하더라도 어느 정도 배를 채울 수 있게 만드는 보험과도 같은 행동이었던 것이다. 이타적 행동은 개개인에게는 불리하지만 집단이 성공할수록 구성원들 모두의 생존을 높인다.

 

 인간은 이제 개인이 아닌 집단 단위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단에 속한 무리와 속하지 않은 무리를 구분하기 시작했고, 집단에 속하지 않은 무리를 위협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뇌는 효율성을 위해 대부분 자동으로 처리한다.

 마치 이러한 물체가 있다면 당연히 볼록한 것이겠거니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사람을 마주할 때도 동일한 처리 방식을 거친다.

 

 우리는 일생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개개인의 속성을 일일이 파악하는 건 어렵기 때문에, 범주화를 통해 집단과 그 사람의 속성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즉, 편견이 여기서 생겨난다. 그래도 편견이 다 혐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전두엽 피질이나 배측 전대상 피질은 사회적 교육을 토대로 편도체의 자동화된 반응을 억제한다. 그렇지만 이 고삐가 언제까지도 유효한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감정'때문이다.

 

우리는 결국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도덕적 판단 또한 역겨운 느낌에 따라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한 실험에서

 실험자들에게 이러한 표를 제시했다. 이는 능력과 성격에 따른 분류이다. 실험자들의 뇌는 약물 중독 노숙자를 제외하고는 평범한 반응을 보였다.

 

 실험자들은 약물 중독 노숙자를 보았을 때 뇌섬엽과 편도체가 활성화되었다. 이들에게 역겨움과 위험을 느낀 것이다. 이 중 어떤 이들에게서는 특정 인종을 보았을 때도 같은 반응이 일어났다.

 

 이러한 반응은 대상이 싫어지게 할 뿐 아니라 그 대상을 부도덕한 존재로 여겨지게 하고, 그 역겨움과 혐오가 결합하면 그 대상을 생물로조차 보지 않게 된다. 마치 벌레처럼 말이다.

 

 우리는 편견을 억제할 때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런데 상대가 벌레라면? 굳이 억제력을 발휘해서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스트레스, 술, 마약 등이 추가된다면 우리의 뇌는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 고삐를 풀어버린다.

 

 

효율성을 위해 생겨나는 혐오

 

 처음에는 혐오 발언과 약한 괴롭힘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사회적 교육을 받은 우리는 이 행동에서 모순을 느낀다. 배측 전대상 피질(dACC)는 이번엔 그 모순으로부터 비롯되는 인지부조화를 해결하려 한다. 그들이 나쁜 것이라고 인지를 바꿔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혐오 행위와 dACC의 조합으로 악순환은 지속되며 서로 강화된다. 이 방식은 주로 군대에서 쓰인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많은 군인들이 살인에 거부감을 느껴 목표를 제대로 조준하지 않았고, 약 70%의 군인이 총을 제대로 쏘지도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런데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은 90% 이상이 제대로 조준사격을 가했다. 이는 상대의 비인간화를 통해 가능케했다. 적은 더러운 곳에서 더러운 음식을 먹으며 기본적인 인권 개념조차 없는 벌레나 해충이라고 교육하는 것이다.

 

 이후 적을 조우했을 때 군인은 전쟁터 내의 극도한 스트레스 속 뇌섬엽과 편도체가 활성화됐다.

 

 

우리는 서로 혐오할 수 밖에 없는 걸까?

 

 혐오가 생물학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서로를 혐오할 수밖에 없는 걸까?

 

 사실 초반에 이야기한 로버스 케이브 실험에는 숨겨진 진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그것이 두 번째 실험이라는 것이다.

 

 첫 번째 실험에서 고의적으로 혐오와 갈등을 조장했지만, 폭력사태까지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 차이는 서로가 서로를 대강 알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두 번째 실험 때는 서로가 서로를 모르도록 철저히 관리했고, 결국 갈등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이후 두 집단들에게 그다음 실험에서 공동 목표를 제시하고, 집단 간 접촉을 의도적으로 늘렸다. 그러자 편견은 점차 사라지고 결국에는 협력하여 과제를 해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혐오를 없애기 위해서는 뇌의 구조를 이해하고 다른 집단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가기보다는 한 발짝 물러나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인지 체크하고 집단에 대해 배우며 가능하다면 직접 접촉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유튜브 댓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섞여서 사는 사회.. 이만큼이라도 평온함이 유지되는 게 기적이고 감사할 일이네요. 저는 지금 사는 곳에서 외국인 신분이고, 때로 그 때문에 부당대우를 받은 적도 있지만 진심을 보여주고 친절을 베풀어 주신 많은 분들이 계셨음을 잊지 않고자 합니다.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적을수록 비인간화, 대상화가 심해지는 것 같아요

 

아.. 내용 좋네요 결국 혐오를 없애려면 서로 만나고 자주 접촉하고 공동의 목표를 같이 이루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더 친해질까... 그런 것들을 위해 더 노력해야 것 같습니다.

 

 

바깥으로 나와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아야 하는 이유

 

 

무의식적인 편견테스트 해보기

 

 

 

 

#지식은날리지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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