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카월드
오늘의 이야기는 3가지다
진시황릉 이야기
이걸 진시황릉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전시황릉의 일부인 병마총이다.
진시황의 무덤 발견경위
1974년 3월 우물을 만드려 주민들이 굴을 파다가 사람 모양의 도용을 발견하여 78년 5월에 발굴을 시작한다. 병마총은 당시 채색이 살아있었으나 빛과 산소에 닿자마자 산화되어 바스라지고 검게 퇴색되어 지금의 색깔이 되었다.
병마총의 크기
현재 발굴한 병마총에는 8천명의 병사, 130개의 전차, 520점의 말이 발견됐으며 놀랍게도 모든 병사의 표정은 다 다르다고 한다. 거기에 크기도 보통 실물크기로 180~190cm의 크기를 지녔다. 그리고 이게 6~7개는 더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 입구다.
이만한 크기의 무덤이 지금까지 도굴되지 않은 이유는?
그리고 역사에 따르면 항우가 함양에 입성할 때 진시황릉을 대대적으로 도굴하였다라는 기록이 남아있어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현재 기술의 문제로 아직 발굴하진 않았으나 크기를 책정해본 결과 이정도였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이집트에서 가장 큰 대피라미드가 밑변 230m고 높이가 146m이다. 대피라미드에 비해 밑변은 약 두배고 높이는 1/2인 넙직한 형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진시황릉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다.
보면서도 얼탱이없는 크기다.
사마천에 사기에 따르면 안은 온갖 보물로 치장해놓았고 관의 둘래는 구리로 길을 만들었으며 엄청난 양의 수은으로 바닷물이 흐르는 처럼 연출해놨다는데 외부도 내부도 미쳤다. 현재 진시황릉 부장품이라며 발굴되는 것은 주변 신하들이 묻힌 부장갱 400개에서 출토된 것들이다.
진시황은 심지어 불태우는데만 3개월이 걸렸다는 아방궁과 만리장성을 만들었다고 한다. 아방궁, 만리장성, 진시황릉? 이 3개를 동시에 만들었다면 아마 지금의 중국도 망할 것이다. 진나라는 안 망할 수가 없었다.
당나라 최초 여황제의 무덤 건릉
진시황릉뿐만 아니라 또 다른 떡밥이 있다. 참 중국은 떡밥 스케일도 어마어마하다. 당나라 시절 중국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여황제였던 측천무후는 624년에 태어나 690년에 죽었고 30살에 황후가 되어 80살이 될때까지 50년간 중국을 주무른 인물이다.
이 인물도 역사에 나와있는 도굴 시도만 17차례임에도 불구하고 입구도 못 찾고 있다. 심지어 무덤의 위치가 알려져있음에도 불구하고
1.당나라 말기에 농민 반란을 일으킨 황소는 40만대군을 동원해 찾았지만 입구도 못 찾았음
2. 당 멸망 후에 온도는 수만명을 동원해서 도굴에 나섰지만 중간에 폭우와 광풍으로 포기
3. 중화민국 시절 군벌 쑨롄중이 군사훈련으로 위장해 3층으로 된 암석층을 폭파시키며 찾았지만 입구도 못 찾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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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왜 못찾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산 어딘가를 파면 갱도가 있는데 어딜 파야하는지 감도 안온다. 이건 중국 산시성 시안 서쪽의 량산에 있으며 건릉의 면적은 240만m2, 내부방이 380칸이나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헌데 이게 왜 이제서야 발견이 됐냐면 1958년 도로 개발을 위한 발파 작업 중 무덤입구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저우언라이가 우리 시대에 좋은 일을 모두 완성할 수 없다며 발굴 계획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1966~1976년 중국 문화 대혁명이 발생한다. (저우언라이 - 건릉을 살린 자)
덕분에 50년이 지난 현재까지 조금씩 연구를 지속해나가고 있다. 50년이나 중국을 지배한 황제이니 명필 왕희지(그의 작품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전해지며 한단계아래라고 생각되는 황정견의 작품은 2010년 769억에 거래가 되었다)의 걸작도 부장되어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된다. 중국당국은 '측전무후의 무덤을 50년 안에 발굴할 생각없다'라고 2012년에 발표했다.
징기스칸의 무덤
지금까지도 미친 무덤이었지만 정말 미친 무덤이 하나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바로 징기스칸의 무덤이다. 이건 발견조차 못했다. 소문에 따르면 참여했던 과정에 마주친 모든 사람을 죽이고, 호송 인원과 함께 말들도 순장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이 와중에 웃긴 썰
무덤의 위치는 단 한 줄의 힌트로 원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원사에서 장기견록이라는 곳에 매장했다고 한다.
유튜브 댓글
쿠빌라이 이후에 원 정도면 중원화가 진행 되어서 거대 황릉을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칭키스칸시대만 해도 골수 몽골인 풍습이 그대로 남은 상태였을테니까 무덤 자체는 유목민답게 어이없을 정도로 단순하게 만들었을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서 더 못찾는 거겠죠. 재밌게 잘 봤습니다.
관광 갔을 때 가이드말로는 색이 바래진건 진시황이 수은을 좋아해서 수로처럼 수은을 가득채웠는데 오픈하면서 기화? 되었다고 하네요나머지도 오픈 못하는것도 수은이 엄청 많아서 유독가스가 나와서 못한다고 하네요
코멘트: 옛날 사람들의 사치는 정말 끝이 안 보인다. 현대로 생각해도 상상이 안되네
https://www.youtube.com/watch?v=54w2X2BJ7EE&list=LL&index=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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