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겁나 혼란스러운 금단의🔥꿀잼 소설
오늘은 아주 복잡하고 담고 있는 메세지가 많아 읽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칠드런 액트>에 대해서 다루려고 한다. 이야기는 역전재판에 대입해서 전개하려고 한다.
등장인물
애덤(위험한 병을 앓고 있는 주인공)
버너(검사)
그리브(애덤측 변호사)
나머지 인물은 이름이 없기에 따로 적진 않겠습니다.
버너
저는 19살의 불쌍한 청년을 살리고자 이 재판을 신청하였습니다. 본 법정을 허가해주신 판사님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사건은 이러합니다. 바야흐로 몇 주 전, 애덤이라는 소년은 복부에 극심한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아가보니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치료하려면 수혈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판사
수혈을 받으면 되지 않나요?
버너
애덤의 가족들은 전부 '여호와의 증인'을 믿기 때문에 애덤을 포함해 모든 이가 수혈을 거부하는 입장입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몸 안에 집어 넣는 일은 교리에 위배된다."라고 하면서요.
판사
다른 치료법은 없습니까?
버너
약을 투여하고 있긴 합니다만,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담당 의사를 통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번째 증인: 의사
의사
애덤은 호흡부전의 초기 징후를 보이고 있어 수혈을 받지 않으면 죽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수혈을 받으면 산다. 그 아이에게도 이에 대한 설명을 행했지만 왜 이렇게 거부하는지... 그 녀석때문에 왜 우리 병원이 피해를 받는 게 이만저만이 아니야.
그리브
선생님, 의료 선택의 자유는 성인의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사실은 아시죠?
의사
당연하지
그리브
성인 환자의 동의없이 이뤄지는 치료는, 폭행에 준하는 행위이지요?
의사
그렇지
그리브
애덤은 자기 스스로 '수혈을 안 받기로' 결정한 것 아닌가요?
의사
아직 미성년자고 어리니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을 영향이 커, 난 인정할 수 없어
그리브
3개월 뒤에 성인이 되는 애덤이 어떻게 '애'라는 겁니까?
버너
어쨌든 지금은 법률상 성인이 아닙니다.
그리브
그것은 '미숙한 결정'인가 아닌가를 따지기 위해서 도입되는 법률이지요. 지금은 19.8살에 또래 애들보다 똑똑하다고 평가받는 애덤의 경우 그것이 '미숙한 결정'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의사
그게 어떻게 애덤의 생각인가? 부모의 생각이겠지. 애시당초 사이비 종교의 교리가 어떻게 합리적인 이유가 되겠나. 기독교인 내가 봤을 때 이건 말이 안돼.
그리브
여호와의 증인이 교주를 신처럼 떠받듭니까? 성착취를 합니까? 무교인 제가 봤을 때는 다 똑같은 거 같은데요?
(주변이 매우 시끄러워진다)
판사
조용히 하세요. 그리고 재판과 무관한 이야기는 삼가해주세요
그리브
네, 알겠습니다. 증인은 수혈로 인한 에이즈 발병률이 20%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실제로 혈우병 환자가 집단으로 에이즈에 감염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수혈로 인해 생기는 병들이 많습니다.
의사
그 사례는 수 십년전 일인데 그걸 가져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나?있어도 매우매우 드문 일이야.
그리브
뭐...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수혈을 거부하는 선택'을 내릴 수 있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애덤과 단 둘이서 이야기를 해보셨다고 하는데 애덤의 지능에 문제가 있던가요?
의사
...아니, 그 아이는 굉장히 똑똑했어.
그리브
의사표현도 분명하고요?
의사
그렇지
그리브
수혈이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제안했을 때 뭐라고 하던가요?
의사
종교때문에 싫다고 하더군.
버너
잠깐만요. 증인. 수혈로 생기는 부작용은 어떠합니까?
의사
아주아주 낮아. 수혈을 받지 않아 생기는 일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 내일까지 수혈하지 않으면 아주 위험한 상태로 접어들거야
버너
이상입니다
그리브
판사님, 다음 증인을 모셔와도 되겠습니까?
두번째 증인: 애덤의 아버지(통칭 A로 하겠습니다)
그리브
증인, 간략하게 '여호와의 증인'을 믿게 된 경위를 설명해주세요
A
저희 가족에게 '여호와의 증인'은 구원 그 자체였습니다. 십 몇년전 저는 하루가 머다하고 술을 퍼마셨고, 그거때문에 직장에서도 짤렸습니다. 그러다보니 돈이 떨어졌고 매일이 집사람과 싸우는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거의 날마다 민원이 들어왔었죠.
그러던 어느 날, 저희 집에 코쟁이 두 명이 찾아와 종교를 권했고, 사이비라고 욕하며 내쫓았죠.
그렇게 권유가 이어지던 어느 날 그들을 따라 왕국회관이라는 곳을 가봤습니다. 생각이외로 그곳의 사람들은 엄청 친절했고, 하루이틀가다보니 어느새 저희 가족에게 평화라는 것이 찾아오더랍니다.
그리브
'여호와의 증인'덕분에 증인의 삶에 변화가 생겼군요?
A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덕분에 저는 정신을 차리고 정부 지원 교육 과정을 이수해, 중장비 운전을 배웠습니다.
장로님과 주변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구요. 덕분에 저는 지금 사장님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직원도 9명이나 있고요.
여호와의 증인덕분에 저는 삶이 풍요로워졌습니다.
버너
그 여호와의 증인이 사랑하는 가족을 죽게 만드는 거 아닙니까?
A
아닙니다. 이 모든 건 다 하느님이 내린 시련이고 저희 가족은 믿음의 시험대에 오른거지요.
버너
수혈을 거부하면 아들이 사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거죠?
A
...우리 애는 죽더라도, 지상낙원에 갈 겁니다. 우리 애는 진짜 진실하고 옳은 일을 하는 것 뿐입니다.
버너
수혈 거부는 애덤의 결정입니까? 애덤의 결정입니까?
A
우리가 수혈을 강요했더라도 우리 아이는 무조건 거부했을 겁니다.
버너
증인, 여호와의 증인 장로가 애덤의 병실에 자주 들락날락한다고 하던데요.
A
네, 장로님들은 애덤의 각오에 크게 감동했고 그저 위로 차원에서 찾아오시는 겁니다.
버너
그렇다면 그것이 애덤의 결정이 맞습니까?
A
이건 그저 유도심문인 것 같습니다.
버너
네, 알겠습니다. 그럼 혹시 애덤이 왜 수혈을 거부하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저희 성경에서는 자기 피에 다른 인간의 피가 섞이는 것을 '오염'이자 '타락'이라고 합니다.
조물주의 선물을 거부하는 행위로 판단될 수 있죠.
이건 창세기, 레위기, 사도행전에도 다 적혀있습니다.
버너
증인이 언급한 성경에서는 피를 '먹는 걸' 금하고, '멀리하라'라고 적혀있는데요? 수혈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A
히브리어로는 '몸 안으로 받아들이다'라고 적혀있습니다.
버너
성경은 수 천년전에 적힌 것 아닙니까. 그땐 수혈이 존재하지도 않았어요
A
하느님 생각 속에는 확실히 존재했습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니 틀림없지요.
버너
아니요. 수혈이 금지된 건 1945년입니다. 신이 아닌 여호와의 증인 간부들 몇 명이서 결정한 사항이죠.
A
변호사님? 우리는 그 분들을 '주님의 종'이라고 부릅니다. 그 분들은 여호와께서 우리와 의사소통하는 경로입니다. 우리한테는 하느님의 목소리 그 자체예요.
버너
수혈을 받더라도 하느님은 계속 믿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A
우리 회중에는 그런 케이스가 없습니다. 장로님들도 확실하게 안된다고 말씀해주셨구요.
버너
애덤이 수혈을 받는다면 여호와의 증인에서 제명당하겠죠? 즉, 애덤이 속한 공동체에서 퇴출당하는 것이고요?
A
그럴 일은 없습니다. 우리 애는 수혈 안 받을 거니까요.
버너
애덤은 부모님과 장로님들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버림받을까봐 두려운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의 선택이 어떻게 어린 소년에게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죠?
A
변호사님도 우리 애와 이야기해보시지않았습니까?
버너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독립적 사고는 사탄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더군요. 왜 이런 문구가 쓰여있는지 아십니까?
A
하느님의 말씀 아래 저희는 하나로 뭉쳐야하기 때문입니다.
버너
이상입니다. 다른 증인들의 증언을 끝으로 변론을 마치겠습니다.
증인1
애덤은 저보다 똑똑할지도 몰라요.
증인2
그 아이의 각오는 확실합니다.
판사
애덤은 굉장히 총명한 소년이고, 논쟁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며, 신앙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어리다", "종교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일이 생겨선 안된다"라는 말이 함께 나오고 있군요.
길릭 권한 판결문(나이가 어리더라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존중해야 한다는 판결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성년자 낙태, 피임 소송에서 아이의 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해 생긴 용어이지요.
가족법이나, 소아 의학 분야에서 기준이 되는 이 '길릭 권한'의 적용여부에 따라 판결이 날 것같습니다.
버너
이의있습니다, 판사님. 이 경우는 다릅니다.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고, 그 아이는 죽음을 낭만적이라고 생각하지, 실질적으로 죽음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리브
저희는 그럼 체감하고 있습니까? 죽음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버너
애당초, 종교가 없는 세상을 살아본 적 없는 애덤이 제대로 된 사고를 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는 현실과 동떨어져있습니다.
판사
그만하세요. 이만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아동법 제 1조 1항에 따르면 '아동의 양육에 관련된 사안을 판결할 때 법정은 아동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한다'라고 되어있다. 그래서 무엇이 애덤을 위한 선택인가를 우선해야겠지)
이번 재판에 대한 판결은........
.
엔딩 A: 종교적 선택을 존중한다.
애덤은 기적적으로 수혈없이 회복하게 되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그는 시력을 잃었다.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에 부모님은 비통의 눈물을 흘렸다. 반면, 애덤은 그저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를 올릴 뿐이었다.
애덤은 전보다 신체가 허약해보였지만 얼굴엔 전에 없던 생기가 돌았다. 그가 왕국 회관으로 돌아가자 이미 유명 인사가 되어있었고 주변에서는 칭찬과 격려가 쏟아졌다.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며 그를 보고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많은 이들은 가족에게 비난을 쏟아냈다. 사이비라며 많은 지탄을 받고 시력도 잃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덤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함과 안정감 속에서 목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엔딩 B: 수혈을 받게 한다
판사
애덤은 총명하나 아동기 내내 하나의 세계에서만 살아왔습니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과 달리 본 법정은 내세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앞에 펼쳐질 모든 삶과 사랑을 고려해봤을 때, 애덤의 장로와 부모는 애덤에게 이로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여, 본 판사의 지시와 선고는 '병원이 수혈을 통해 애덤을 치료하는 행위는 적법하다'입니다.
시간이 흘러, 수혈을 받은 애덤은 무사히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부모님들은 애덤을 얼싸안고 "...정말 다행이다...정말 다행이야...."라는 말을 반복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애덤은 혼란스러웠다. 낯선 이의 피가 몸속에 흐른다는 사실에 구역질이 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는 익숙해졌다.
애덤은 더 이상 왕국회관에 가지 않았다. 그저 그 날의 판결문을 읽고 또 읽었을 뿐이다. 애덤은 회관 친구들과 멀어졌고, 부모님과도 크게 싸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집에서 나왔다. 처음으로 신앙없이 바라본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곧, 두려움이 몰려왔다.
애덤은 몹시 즐겁다가도 몹시 슬프게 되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던 1년 뒤 백혈병이 재발했다. 그는 입원을 했고, 병원에서는 치료를 위해 수혈을 하려했다. 애덤은 스스로 수혈을 거부했다. 그의 결정에 종교적 신념은 없었고, 법정으로 성인이 된 그이기에 제지할 수단 또한 없었다. 그렇게 그는 세상을 떠났다.
너 진짜 똑똑하다
원작의 흐름이 엔딩B와 같다. 아마 법정이었어도 십중팔구 B의 판결을 내렸을 것이다.
뭔가 찝찝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애덤측의 주장은 딱히 어긋난 게 없다. 만약 애덤의 아버지가 백혈병에 걸렸다고 해보자. 애시당초 법원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선택을 존중받았을 것이다. 왜냐면 그는 성인이니까
그렇다면 애덤은 어떠한가? 그는 성인이 되기까지 고작 3개월도 안 남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충분히 성인의 인지 능력을 갖춘 성숙하고, 똑똑하다고 평판이 자자했다. 법에 어긋나는 것도 없었고 근거가 되는 원칙 또한 명확했다. 더군다나, 그의 신실함을 고려해봤을 때, 3개월이 지난다고 해도, 그가 성인이 된다고 해도, 그의 선택을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B를 골랐다. 이유는 간단하다. 생명의 가치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애덤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했으니까, A와 같은 판결은 사회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당신의 결정에 영향을 준 건 애덤의 아버지였을 것이다. 그는 법정에서 "성경에 있으니까 아무튼 맞는 말이야", "그냥 원래 그런가야"라는 증언을 반복했다. 우리는 그 주장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원래'? 이 말은 정말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말처럼 들린다1. 심지어 버너가 이야기하듯 수혈금지라는 조항은 하느님이 아닌 장로 몇몇이 내린 결정이다. 이걸보고 참으로 조잡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근데 사람들은 1969년 영구에서 단 '한 명'의 판사가 내린 판결문과 길릭 권한을 권위있는 근거로 받아들이고 설전을 이어나간다. 판결문에는 이렇게 적혀있었고 이렇게 해석해야하고 저건 다른 사례가 있었고라는 식으로 말이다. 여러분 역시 인간 여러 명이 만든 교리를 들먹일 때와 달리 인간 한명이 내린 판결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생명이 왜 가장 소중한 가치인가?, 애덤이 왜 자유로워야하는가? 인권은 왜 있는 건가? 이걸 왜 지켜야하는가?
그럼 당신은 뭐라 대답할 것인가? 아마 애덤의 아버지와 같은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원래 그런거니까"
길릭 권한뿐아니라 세상의 모든 조항, 규칙, 법들은 인간 몇명이 만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지키지말라라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를 잘 유지하고 싶다면 그걸 믿고 지켜야한다. 그리고 그건 애덤의 가족도 똑같다. 애덤의 가족이 여호와의 증인을 예전처럼 한심하다고 '인식'하는 순간 그들은 한심하고 불행하고 불완전한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수혈거부는 그들에게 있어 치명적인 '오류'임은 부정할 수 없는 바가 확실하다.
그렇다면 법은 '오류'가 없을까?
최근엔 담당 변호사가 출석을 안 했다는 이유로 학폭이라는 큰 죄가 엎어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돈 많은 사람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기도 하고 판사 개개인이 자기 편견에 비추어 함부로 판결을 내리는 일도 부지기수로 존재한다.
우리는 이를 보며 화가 나고, 속상해하고, 답답해한다.
그렇다고 여호와의 증인 장로가 이런 이유로 법을 지키지마라!라고 해도 되는 걸까? 잘못된 법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거야 있을 수 있겠지만 법 그 자체를 잘못됐다고 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여호와의 증인 장로는 "법을 어기라"라고 말할 수 없다. 그건 정말 당연한 이야기이다. 근데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을 믿는 자에게 참으로 가볍게 "교리를 어기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법과 상식을 들먹이며 그걸 강제하기도 한다. 방금 여러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 것처럼
위의 이야기를 유관순님으로 바꿔보자. 17살인 그녀를 '애국자로서 죽이는가', '친일파로서 살리는가'에 대한 판결이라면 어떨까? 위의 경우와 따지면 결이 다르다고도 볼 수 있지만, 숭고한 목적을 위해서 목숨까지 내놓았다는 측면에서 여호와의 증인이 보는 애덤은 우리가 보는 유관순님과 비슷할 것이다.
왜 애덤의 판결에는 확신을 가지고 결정을 내렸던 우리가 유관순님의 판결에는 우물쭈물 망설이게 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유관순님과 우리의 가치관은 '주류'고 애덤의 가치관은 '비주류'이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신념, 가치관은 비슷한 장점과 단점을 가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걸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는 '얼마나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는가'이다. 이 힘은 무려 비주류를 '강제'할 수 있을 정도이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주류의 강제가 좋은 의도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나쁜 의도는 없다. 그냥 진심으로 이 선택지가 애덤에게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고, 경험과 이성에 근거해 애덤의 행복을 위한 선택을 진지하게 고민한 결과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심사숙고 결정한 선택지는 그에게 있어 최악의 결말이었다. 그는 공동체, 친구, 가족을 잃고 공허함에 허덕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말에 이른다.
우리는 애덤이 행복해지는 선택지를 골랐다고는 하지만 그 자리에 애덤이 있었다면 필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네가 나로 살아봤냐?"
그럼 당신은 항변할 것이고 애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건 네 생각이고"
우린 종교가 뭔지, 애덤이 어떤 기분으로 살지, 이 판결이 애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애덤 가족에게 '적당한' 연민과 친절을 베풀었을 뿐이다.
이 책은 누구에게나 비주류의 여지가 있음을 은근슬쩍 말하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중간에 이야기하는 부분을 생각해보자. "기독교인 내가 봤을 때 그건 말이 안돼", "무교인 제가 봤을 때는 기독교나 여호와의 증인이나 별 차이가 없어보이는데요?"
이 뿐인가? 우리는 종교, 직업, 성별, 취미 등 장소와 사람에 따라 주류가 비주류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주류가 되면 '연민의 특권'을 누리기 바쁘다.
마이너한 취미를 즐기는 이들에게 "제발 이상한 것 좀 그만보고 밖에서 사람 좀 만나"라고 한다던가, 이미 동성을 사랑해버린 이에게 "그건 비정상적이니까 당장 헤어지고 이성을 만나 결혼해라"라고 한다던가, 평소 가부장적인 삶을 산 이들에게 "할머니는 핍박받았고, 할아버지는 과도한 책임을 짊어져왔다"라고 한다.
별다른 책임없이 그들을 주류로 끌고와 발가벗기기'만'하는 건, 타인을 계도한다는 도취감말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 애가 원했던 건 모든 사람이 다 원하는 것..'의미'였어
-칠드런 액트-
유튜브 댓글
Q. 그러면 JMS나 아가동산도 이해해줘야 하냐?
그렇다면, JMS나 아가동산 같이 남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가하는 비정상적인 세계관도 이해해줘야 하는 걸까요?
이 질문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와 <지옥변> 영상에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이번 영상에서도 꼭 필요한 내용이었지만 ㅠㅜ 난이도 조절을 위해 따로 찾아 뵈려 합니다.
간단 스포를 남기자면.. 결국 우리는 인간이란 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이 크게 공유하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보편적 윤리는 반드시 필요할테죠.
개인적으로 극한의 상대주의는 전체주의보다도 나쁜 거라 생각합니다. 결국, 해당 작품 역시 주류 이데올로기의 허점을 짚어내는 비교 대상이 비주류 이데올로기 (의 극단적 상황) 였다는 점에서..
‘비주류도 주류와 다르지 않다’에 그치는 내용은 절대 아닙니다. (아주 중요)
#사이비
#칠드런액트
MBTI 더 좋아지는 법(성격 좋아지는 법) (1) | 2023.06.10 |
---|---|
사람은 안 바뀔까? 고쳐쓰는 게 아니다? (1) | 2023.06.02 |
문학, 역사, 철학 왜 함?시간낭비하지마라 (0) | 2023.05.02 |
[나의 투쟁] 100번 읽은 것처럼 만들어드림 (1) | 2023.04.28 |
97%는 스마트폰을 잘못 쓰고 있습니다 (1) | 2022.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