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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인생을 바친 중국 황제이야기

동영상(지식정보 전달)/썰앤사

by 세상 온갖 잡지식 2023. 11. 8.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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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사

원제: 조선에 인생 다 바친 어느 황제 이야기 ㅋㅋㅋ

 

 

 

 

명예 한국인

 

최초의 조선 황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조선 최고의 황제

 

조선 산타클로스

 

조선을 구한 은혜로운 조선 천자

 

고려 천자

 

 

 라는 타이틀을 가진

 

 하지만 중국사를 통틀어 암군 TOP3에는 무조건 손꼽히는 인물인 명 신종 만력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만력제와 장거정

 

 

 때는 16세기 황제가 되기 전 어린 만력제에게는 장거정이라는 스승이 있었다. 그는 만력제를 매우 엄격하게 가르쳤고 청렴을 우선시하라고 했다.

 

 그렇게 가르침이 이어지던 나날이 이어지고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만력제는 황제에 등극한다. 다만, 아직 어려서 국정 운영을 맡을 능력이 미숙했던 그는 장거정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 황제가 되서도 공부에 전념해야했고 국정 운영은 장거정이 도맡아 한다.

 

 장거정은 국정 운영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북방 경계를 위해 군비를 확충

 

황하 치수사업(물길을 다스리는 사업)을 완성

 

인사 고과제도를 도입하여 관료들의 부패척결

 

인구조사와 대대적인 토지 측량을 통해 숨겨진 땅을 찾아내 나라 재정 축적

 

돈, 공물, 쌀 등 복잡한 세금이 많던 잡세를 은으로만 내게끔 통일

 

 

 

 이를 보고 감명받은 만력제는 국정 운영을 하고 싶어했지만 장거정은 반대하고 어린 그를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가르쳤다. 책을 펴고 어느 구절을 읊은 후 그 이후의 내용을 더듬거리거나 틀리면 정신이 피폐해질 정도로 심하게 갈굴 정도였다.

 

 또한 유흥 또한 엄히 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 조차 심취하면 송 휘종처럼 나라를 말아먹을 수 있다며 자제시켰다.

 

 이렇게 엄하던 장거정이지만 만력제는 그를 존경했고, 장거정이 집을 새로 지을 때 사비로 천 냥을 지원할 정도였다.

 

 만력제가 즉위한 지 10년이 되던 해, 장거정이 세상을 떠난다.

 

 

 여기서 엄청난 반전이 일어나고 마니...

 

 

 

장거정의 실체

 

 

 만력제는 청렴한 스승에게 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신하들에게 국가에서 장례식을 치러주자고 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장거정은 전국에 부동산만 수십 채를 지니고 있었고, 집을 지을 때도 지원받은 천 냥뿐이 아닌 '전부' 황제의 지갑으로 지었었다.

 

 만력제에게 청렴을 교육하던 장거정은 정작 세금을 뒤로 빼돌리며 부정부패를 일삼은 미친 놈이었다.

 

 만력제는 엄청난 배신감으로 인해 무기력에 빠지고 국정 운영을 파업하는 초유의 사태에 이른다. 문제는 명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사람이 만력제로 48년간 즉위했다. 거기서 무려 30년 이상을 파업했다.

 

 그는 스승에게 배운 비자금 빼돌리기 솜씨와 여색을 밝힘으로써 국고를 바닥낸다. 황제가 국정을 돌보지 않으니 고위관직 31석 중 24석이 공석이었고 곳곳에서는 반란이 일끓었으며 황제가 집행해야하는 사형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사형수는 늙어죽었다.

 

 

 

만력제가 산타로 전직하는 과정

 

 

 그러던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쳐들어오며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조선은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했지만 만력제는 "어쩌라고"를 시전한다.

 

 그 날 밤 만력제는 묘한 꿈을 꾸게 되는데...

 

 

관우: 형님...일어나십시오 형님...!

 

만력제: 관우신이 여기 어떤 일이십니까...!

 

관우: 왜 이러십니까? 저 같은 하찮은 아우한테 무릎을 꿇으시다니? 유비 형님 이럴 때가 아닙니다. 장비가 위험해요!

 

만력제: (내가 유비?) 장비가 누군데?

 

관우: 장비의 환생이 조선(선조)입니다. 빨리 가서 장비를 구해주십시오!

 

 

 

만력제의 조선지원

 

 

1

만력제는 잠에서 깨, 8년 만에 조정에 모습을 드러냈고 명의 국고가 바닥나든 말든 상관않고 조선에 끊임없이 원군을 보냈다. 군자금으로 은자 5만을 같이 보냈지만 조선에서는 은을 쓰지 않아 병사들이 굶자 쌀 20만 석까지 추가로 보내줬다.

 

2

나라가 반란으로 개판이었는데도 조선으로 가는 운송로가 난장판이라는 말에 명에서 도로 정비에 보조까지 해주고 친히 개인 비자금에서 금은보화를 꺼내 조선에 선물해주기도 했다.

 

3

심지어 왜군을 물리치던 이순신 장군에게도 금은보화와 작위를 하사했고 6년 후 정유재란이 터졌을 때는 또 다시 20만이라는 엄청난 원군을 보내준다.

 

4

잇다른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선에 만력제는 개인 금고까지 털어가며 100만 석(약 9만 톤)에 달하는 쌀을 지원했다.

 

농담이 아니라 이 원조가 없었다면 조선은 정말 망했을 것이다.(식인 행위까지 이루어졌을 정도로 난장판이었음)

 

 

 

 

조선의 신처럼 여겨진 만력제

 

 

 조선에서는 그래서 만력제가 거의 신처럼 모셔졌다. 그러한 시대 상황이었기에 광해에서 한 신하가

 

 "명이 있어야 조선이 있는 법. 오랑캐와 싸우다가 짓밟히는 한이 있더라도 사대의 예를 다하는 게 황제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 사료되옵니다."

 

 이런 대사를 읊는 것이다. 그저 조선 유학자를 틀딱이라며 폄하하기보다는 시대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에 힘을 기울여야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ㅡ나게 어려웠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청나라에게 겁나게 맞던 조선은 만력제 때문에 명을 끝까지 배신하지 않았다. 청은 그런 조선을 매우 한심하게 봤다.

 

 만력제에 대한 고마움은 길게 이어져 고종이 만력제에게 제사를 지낼 정도였다.

 

 

 

side story 1

 

 구제시장 동묘의 풀네임은 동관왕묘로 관우의 동쪽묘라는 뜻이다. 왜란 후 만력제의 꿈에 나와 조선을 구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관우신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는 썰이 있다(야사임).

 

 

side story 2

 

 만력제는 조선 천자답게 왜란이 끝나자마자 다시 파업에 돌입한다.

 

황제 즉위 후 10년 간 공부만

왜란이 일어난 7년 간 일

남은 31년 모조리 파업

 

이러니 가히 조선 천자라고 불리울 만하다.

 

 

side story 3

 

 만력제는 진시황에게 자극받았는 지 죽을 때 그간 모은 비자금으로 깊이 67m, 총 면적 1200m2의 무덤을 지으며 당시 800만냥(명 전체 2년치 토지세 수입)에 달하는 엄청난 비용을 쓴다.

 

이후 중국의 '그 혁명'으로 그 무덤은 아주 개박살이 난다.

 

 

 
유튜브 댓글

 

꿈속에 관우가 장비를 구하라고 해서 조선 도운거 팩트면 진짜 미쳤네ㅋㅋㅋㅋ팩트가 아니라 야사인 것 같긴한데 관우사당 동묘에 만동묘 세워진 이유가 그거면 개웃길듯

 

인조가 괜히 명나라를 편든 게 아니었군요. 결과는 참담했지만 이해는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코멘트: 영상 더빙이 아주 맛깔나니 시청을 추천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s_Mjrov7iI&list=LL&index=5

#썰앤사

#중국

#조선

#명나라

#만력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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