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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남자 (feat.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동영상(지식정보 전달)/썰앤사

by 세상 온갖 잡지식 2023. 11. 1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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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사

 

 

 

중국의 마지막 영웅

 

 

 현재 중국 정치세력은 외교와 국내 사정이 정말 수구적(옛 관습을 따르려고 함)이다. 그러다보니 주변국들도 그렇고 중국인들도 정치인을 혐오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이 인물'만은 모두가 대인이었다고 인정했다. 중국 초대 총리이자 초대 외교부장이면서 인간불신이 극에 다른 마우쩌둥마저도 그에게만큼은 일을 끝까지 믿고 맡겼다.

 

 희대의 천재로 불리며 일본, 프랑스 유학을 다녀오고 국민당의 장제스도 이 사람을 어떻게든 포섭하려고 시도할 정도라는 이야기가 있다.

 

 추후 장제스가 대만으로 도망치고 난 후 주은래가 옆에 있었다면 베이징에는 중화민국 국기가 휘날릴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저우 언라이, 한국 발음으로는 주은래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주은래의 능력

 

 주은래는 국민당에서 군생활을 시작했으나 당시 국민당이 엉망이었고 1차 국공합작을 멋대로 폐기한 장제스에 반발한 장제스에 반발한 주은래는 마오쩌둥의 공산당에 투신했다.

 

 그리고 여러 고생고생을 같이 겪으며 마우쩌둥은 주은래를 전적으로 신뢰하게 된다.

 

 1차 국공합작: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이 합작하려고 시도한 것. 당시 소수였던 공산당이 국민당에게 통합되는 구조였다. 공산당이 대등한 합작을 요구하자 국민당은 거절했다.

 

 

 

중국의 장래 발전안

 

이후 공산당의 2인자가 된 주은래는 전쟁보다는 외교와 보급으로 국공대전을 공산당의 승리로 이끈다. 그리고 승리 후 아직 중국의 대외팽창은 시기가 이르니 인도와 더불어 일단 제 3세계에서 입지를 다지고 국력을 신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미국의 국력에 다다를 때까지 유지해야 아시아 각 국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지만 보다시피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만을 차지할 타이밍 제시

 

그는 한국전쟁참전을 반대했었다. 그 시간에 한시라도 빨리 1순위인 대만을 먹어야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중국은 대만을 차지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또한 김일성에게 UN군이 상륙한다면 인천으로 온다고 조언했지만 전략적 안목이 0였던 김일성은 이를 무사하며 안록강까지 밀린다.

 

 

엉망진창인 상태의 외교 정상화

 

중국이 한국전쟁, 소련과의 불화로 1세계(자본주의 국가), 2세계(공산주의 국가)와의 외교가 엉망이 되자 영어, 불어, 일본어, 독일어, 러시아어까지 가능했던 주은래가 엄청난 업무량을 통해 각 국의 대사를 구워 삶아 정위치에 다시 옮겨놓았다.

 

그의 외교 원칙은 '구동존이'로 '다름을 인정하며 공통점을 찾는다'였다.

 

 

 

 

대형사고를 친 마우저뚱

 

 

대 약 진 운 동

 

 

 소련이 미국을 곧 앞지를 것이다라는 발표를 하자 마오쩌둥은 자신들도 자본주의 2순위 국가인 영국을 앞지를 생각을 했고, 소련이 했던 5개년 계획을 따라한다.

 

 그러나 국공전쟁으로 경제가 좋지 않았기에 오히려 이 일은 몇 십년 경제후퇴를 불러오는 결과를 불러오고 무려 4,500만 명이 아사한다.

 

 

 때문에 중국 내에는 여러 곳에서는 마우쩌둥을 까내리는 기사들과 공산당에 반발하는 민심이 뒤덮게 되고 이런 와중 공산당의 비리까지 밝혀지며 국정은 난리가 나게 된다.

 

 마우쩌둥은 권력을 다시 휘어잡기 위해 젊은 층, '홍위병'을 이용해 엘리트 대학살을 펼친다. 이들은 지식인들을 반동분자라는 명목으로 구타하고 처형했고 이를 계기로 사회 엘리트 층이 싹 다 날아간다. 당시 시진핑도 반동분자로 찍혀 강제로 낙향하여 농사를 지었다.

 

 뿐만 아니라 산업기반, 역사, 요리, 문화 등이 죄다 박살난다. 사실상 현대 중국의 모든 문제점이 여기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을 수준이다. 2,500년 간 쌓은 데이터가 싸그리 초기화되었다고 평가된다.

 

 

 

주은래가 지킨 문화유산

 

 

 주은래는 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1,700년 전 인도 승려가 건립한 절 연은사를 입구에 마오 사진을 걸어두게 지시하여 지켜냈고

 

 티벳인들의 정신적 고향이자 역대 달라이 라마의 거주지인 포탈라 궁은 직접 군대를 보내 티베트 봉건세력의 인민 착취물이라는 증거라는 명분으로 보호

 

 명청 왕조 때 지어진 중국의 군본이자 황궁인 자금성은 주은래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보호

 

 공자의 무덤이자 위패가 모셔진 공묘는 무덤은 막지 못했지만 건물까지 불태워지는 걸 보호

 

 파괴된 시설은 복원하고 중국 불교 문화의 정수이자 동아시아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문화재인 둔황 막고굴을 군대를 보내 진입 저지

 

 중국 최초의 여황제 측천무후의 무덤인 건릉을 훼손 금지 지시를 통해 보호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홍위병으로 보호하기 위해 경호병력 증파

 

 장군총, 광개토대왕릉비같은 고구려, 발해 유적을 '한민족'의 역사이니 북한에게 소관이 있다라는 명분으로 보호

 

 이외에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문화재를 보호했다.

 

 이 일을 전부 지시하고 계획을 만들었던 그는 사실상 괴물이 아니었을까...

 

 

 

 마우쩌둥은 숙청리스트를 만들 때 이런 주은래의 서명을 꼭 집어넣고 그를 방관자로 만들어버린다. 아마 이것도 주은래가 반발했다면 그가 지켜낸 유산들도 기록으로만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주은래가 대인으로 평가받는 이유

 

 

경험자 우대

 

 주은래는 총리임에도 공사 현장에 방문하여 인부나 시민들의 의견을 물었고 자신의 지시보다는 현장 경험자인 인부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였으며 추후 덩 샤오핑은 이를 존경해 어느 정도 주은래를 따라하여 노력했다.

 

 

평등주의

 

 그는 한족중심주의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입장으로 소수민족들도 평등해야하며 어떠한 차별도 금지해야한다는 주장과 정책을 펼쳤다.

 

 

역사 존중

 

 중국과 북한이 영토 경계에 대한 협상에 들어가자 조중변계조약 때 사실상 중국 영토였던 백두산 천지를 조선인의 땅이라는 이유로 54.8%를 북한에게 양도했고 압록강의 대부분의 땅도 위와 같은 이유로 양도했다.

 

 3.1운동 당시에도 조선에 관심을 가지고 안중근 의사의 연극을 본다던지 황포군관학교에서 많은 조선인 독립운동가를 제자로 두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사를 중국사의 일부다라고 주장하는 일부 학계의 의견을 전면적으로 반대하며 발해, 고구려사는 전적으로 한국사라고 규명하며 중국사회과학원에 전면적인 경고와 함께 북한 사절단이 오자 이에 대해 사죄했다.

 

 심지어 1962년 북한이 고조선 발원지를 찾기 위해 만주 발굴 조사를 요청하자 쿨하게 허가한다. 자국의 땅 조사를 유적을 찾는 목적이라며 허가하는 거보면 정말 대인일 수 밖에 없다.

 

 

 그는 갈수록 건강이 악화되었고 죽기 전 미국과의 수교를 끝내놓아야한다고 생각하여 미국 외교계의 거물 헨리 키신저와 담판을 통해 닉슨을 중국으로 초청한다.

 

 추후 닉슨과 키신저는 주은래에게 엄청난 감명을 받았다고 할 정도였다.

 

 

 

 

그저 로맨티스트..

 

 

 이렇게 실력이나 인품 두루방면 뛰어났던 주은래였지만 마우쩌둥과 그의 측근이자 희대의 간신배 4인방이 그가 방광암에 걸려 생과 사를 넘나들 때 이를 방치해버려 결국 삶을 마감하게 된다.

 

 사망 전 쓴 그의 일기를 보면 마우쩌둥을 국가 주석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는 내용이 적혀있다. 만약 마우쩌둥이 그의 말을 들어 점진적인 개혁으로 갔다면 21세기 이전에 중국은 세계패권을 다툴 수 있었을 것이고 한국, 일본의 소프트파워를 진작에 압도했을 것이다.

 

 거기에 여자관계가 더럽던 공산당, 국민당 관료들과는 달리 주은래는 오직 자신의 아내인 덩잉차오만을 사랑하여 헌식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늘 그의 아내에게 로맨틱한 말을 했고 죽기 전 편지에는 "오, 당신의 눈과 입술이 그립소. 그대에게 뜨거운 키스를!"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스윗 중남 + 유학 출신 능력자 + 존잘 + 혁명가 + 대인 + 평등주의자

 

 

side story

 

 장제스가 여자문제가 더럽긴 했지만 흐루쇼프(소련의 최고 권력자) 등이 그의 능력과 인품에 대해서는 인정할 정도 였다. 당시 정적이었던 장제스에 대해서도 주은래는 공산당의 공격을 제지하고 여자 문제를 훈훈하게 마무리해주었다

 

 그저 대ㅡㅡㅡ인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유튜브 댓글

 

주은래의 가장 대단한 부분은 정치를 할 때, 남을 비판하지 않고 도와주며 자신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받으면 그 비판을 수용해 개선했다는 것. 이게 썅 말이 쉽지 정치계에서 이러는 경우 진짜 없거든요;; 지금 대선만 봐도… 어휴..

 

모두가 미친 시대에 정상인으로 사는게 얼마나 힘든지 보여준 인물

 

주은래선생님은 중국에서도 대인이라 불리며 대장정때 몸이 상해 임신을 못하는 아내를 평생 아끼고 사랑하며 살았고 전쟁으로 부보를 잃은 아이들을 입양해서 키울정도로 가정에서도 천사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8i0pAnYUdFk&list=LL&index=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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