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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신앙도 모르는 "인간" 예수

동영상(지식정보 전달)/너 진짜 똑똑하다

by 세상 온갖 잡지식 2024. 9. 1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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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진짜 똑똑하다

 

 우리는 예수를 아무튼 자애롭고 자비롭게 용서하고 받아주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오히려 정 반대의 행보를 보이신다.

 

 채찍을 휘두르며 불법 노점상을 개박살 내기도 하고

-

(마태 21:12, 마가 11:15, 누가 19:45, 요한 2:13 / 예루살렘 성전 정화)

 

 누군가가 헛소리를 하면 날카로운 논리로 반박하고 비판했다.

-

(사탄의 시험 / 마태 4:1, 마가 1:12, 누가 4:1)

(권위 논장 / 마태 21:23, 마가 11:27, 누가 20:1)

(납세, 부활, 계명, 다윗 논쟁 / 마태 22:15, 마가 12:13, 누가 20:20)

 

 전통과 규칙을 강요만 하는 꼰대들에게 샤우팅을 지르기도 하며

-

(마태 15:1, 마가 7:1), (마태 12:1, 마가2:23, 누가6:1), (마태 12:9, 마가 3:1, 누가6:6), (마태 12:22, 마가 3:20, 누가 11:14, 12:10)

 

 소중한 제자라 할지라도 허튼 짓을 하면 정색하고 경고했다.

-

(마태 16:21, 마가 8:31, 누가 9:22)

 

 여기서는 신비에 대한 것을 전부 빼고 칸트가 매료되고 니체가 반한 '인간 예수'에 대해 다뤄볼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 예수'는 신인지 신이 아닌지에 대한 논쟁을 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그의 메시지에만 집중하기 위해 쓰여진 표현이다.

 

 

 

당시 시대상

 유대인 사회는 로마가 지배국으로 들어서며 괴뢰국으로 전락한다.

 

 그렇게 유대인들은 조금은 팍팍하지만 어찌저찌 살 만한 느낌의 삶을 보낸다.

 

 그 속에서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과 모세가 말든 율법을 지키며 살았지만 갈수록 1,500년 전 쓰인 성경과 율법을 입맛대로 자기 삶에 편한 대로 맘대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실패하고 흉측한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에게 미움받는 것이라며 도태된 사람들을 엄청나게 무시했다.

 

 이러한 상황 속 혜성같이 등장한 것이 '예수'이다.

 

 그는 강연을 3년 밖에 하지않았지만 수많은 사람이 그를 따랐다.

 

 그러자 기득권 층의 사람들은 예수가 몹시 아니꼬웠다.

 

 뭔가 똑똑하긴 한 거 같은데 자신들은 힘들게 노력해서 이 자리까지 올라와 같은 일을 하는 것에 반해

목수 일이나 하다 온 나사렛에서 온 깡촌 사람이 성경을 가르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다 예수는 언제나 하층민과 모자란 사람들과 어울려 다녔다. 그의 12제자는 대부분 무시받는 하층민들이었으며 그 중 한 명은 현대의 폰팔이, 중고차팔이로 혐오와 편견의 직업 중 하나였다.

 

 뿐만 아니라 술집 여자, 범죄자와도 자주 만나고 이방인들이 착한 일을 하자

 

"너네들이 교회다니는 애들보다 낫다."

-

누가 10:25

 

라는 칭찬도 하였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방인을 혐오했다.

-

마태 12:22, 마가 3:20, 누가 11:14

 

 

 그는 시간이 지나자 율법마저 어기기 시작한다.

 

 '빨간 날에는 쉬어야한다.'는 율법을 어기며 주말에도 성경을 가르치러 다니고 씻지도 않은 더러운 손으로 빵과 포도주를 마셨다.

 

 그러자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가 길거리로 나올 때마다 구약 내용을 지키지 않는다며 짓궃게 굴었고 예수는 그런 그들에게 일갈했다.

 

"성경을 지키지 않는 건 네 놈들이다."

-

(마태 23:1, 마가 12:38, 누가 11:43)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짚고 넘어가야한다.

 

1. 우리는 하나님이 만들었다.

 

2. 서로 서로 사랑하자

 

성경은 이 두 줄짜리 교훈을 이해하기 위한 설명서에 불과하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문장에 모든 성경의 참뜻이 있다!

마태복음 22:37~40

 

 

 

 예수는 편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고 그 사람만을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불교로 따지면 '공'을 알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https://blog.naver.com/readingyoutube/223299639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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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에 대한 내용

 

 

 예수가 비판한 '빨간 날에 쉬라.'는 내용을 파헤쳐보자. 모세의 규칙에서는 빨간 날에 쉬지 않으면 때려죽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이유는 때로는 일에서 벗어나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고, 쉼으로써 남들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기 위함이다.

 

 이런 본질을 무시하고 그저

 

"빨간날에 쉬어야 되는데 뭐하냐? 저 놈을 때려 죽여야한다!"

 

라고 외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일갈했다.

 

 "양이 구덩이에 빠졌을 때도 빨간 날이라며 구하지 않을 것이냐?"

 

 "네 놈들이 존경하는 위인들 또한 너희처럼 딱딱하게 굴더냐?"

 

 "제사를 지내는 것보다 그 마음이 중요한 것을 지도자라는 놈들이 정녕 그걸 모르는 것이냐?"

 

 그는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순한 사람'이 아니라, '강한 사람'이었다.

 

 

 예수는 성경을 리워크했다기 보다는 리메이크한 사람에 가깝다.

 

 옛 사람을 존경하고 존중해야한다고 하면서도 틀린 부분은 확실히 틀렸다고 말했다.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원수를 미워하고 이웃을 사랑하라'에 가깝다.

 

 그렇기에 예수는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우리는 조건이나 편견없이 사랑해야한다."

 

한다며 말하고 이를 실천했다.

 

 그는 세상에서는 부조리한 결과가 언제나 생겨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무심한 말과 통계에 희생당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았기에 사람을 대할 때 외적 조건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앞의 사람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위로하고 용기를 주었다.

 

 이것이 예수가 말하는 '아가페', 사랑이다.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져라에 대한 이야기

 

 대상이 됐던 여성의 죄는 말이 많지만 일단 불륜이라고 가정하자.

 

 현대 사회에서는 사형까지 갈 정도의 중범죄는 아니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여성은 물건으로 취급됐고 불륜은 중범죄로 취급됐다.

 

 아마 현대로 따지면 성범죄자에 가깝지 않을까.

 

 돌은 던지는 형벌은 사실상 사형에 가까웠다.

 

*당시에는 투석형이 있었다. 21세기 이란에서도 종종 행해지는 형벌이다.

 

 

 이후 그는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 뺨을 내주라는 말들을 하며 현대 사람들까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전 내용들에 따르면 예수는 악을 비판하고 신랄하게 까내리지 않았던가?

 

 입으로는 자애로우면서 신체적으로는 폭력적이었던 인물이었던걸까?

 

 우리는 이 두 모습을 하나로 합쳐야만 예수의 본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사람은 죄를 짓기 너무나도 쉽다

 

 누군가 나에게 작품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언제나 '죄와 벌', '조커', '나의 아저씨'를 꼽는다.

 

 이유는 이러하다.

 

 만약 당신 앞에 누구나 죽일 수 있는 버튼이 갑자기 생겨났다고 가정하자.

 

 누를 것인가?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어서 누르진 않을 것 같다고?

 

 

 자, 그럼 어느 날 아침 출근 길에 소매치기를 당하고, 출근해서는 지각했다며 잔소리를 듣다가 오후 퇴근할 때는 해고 통보를 받는다.

 

 넋이 나가 집으로 가고 있으려니 전화가 울린다.

 

 "ㅡ님 아들 분 되시죠?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니 ㅡ."

 

 그렇게 사고 현장으로 가려니 동네 양아치들에게 시비가 붙는다.

 

 "표정이 뭐냐 그게? 띠껍네."

 

 그리고는 주먹으로 이곳저곳을 두들겨 팬다.

 

 "야, 얼굴 때리지마. 티 나잖아. 배랑 다리 쪽으로 두들겨 패."

 

 그렇게 수그려서 갈비뼈, 종아리, 발목 등을 차이고 밟히며 고통을 호소하는 당신 앞에 앞의 양아치들을 죽이는 버튼이 튀어나온다.

 

 그럼에도 안 누를 것인가?

 

 나는 누른다.

 

 

 일제 시대에 태어난 당신에게 친일파 제안이 온다면?

 

 하루종일 일해도 이자 변제도 하기 어려운 당신에게 수 억원 횡령의 기회가 찾아온다면?

 

 결혼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 당신에게 말도 안되게 아름다운 여성이 플러팅을 해온다면?

 

 그리고 이 모든 게 절대로 안 걸릴 거 같다면?

 

 그래도 안 할 것인가?

 

 

 이전 인터넷에 '버튼을 누르면 1만원을 주나 지구 반대편의 사람이 죽는다'라는 이야기가 돌아다닌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동전을 꼽아놓는다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로 누른다는 비율이 많았다.

 

 이처럼 사람은 상황에 따른 '악'에 너무나도 나약하다.

 

 우리 또한 살아오며 수많은 악을 저질러 왔다. 그럼에도 모두가 다른 결말을 맞이한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작품들의 공통점은 죄를 저질렀을 때 주변에

 

 '당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작품들이다.

 

 

 예수는 위선을 떠는 자들에게 일갈하고 눈 앞에서 죄를 인정하며 진심으로 반성하는 자들을 이해하고 용서했다.

 

 사람들을 이를 보고서야 자신들도 예수에게 찾아가 죄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

 

 예수의 말의 뜻은 이러하다.

 

 "죄를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도 죽일 듯이 달려들어 괴롭힌다면 대체 누가 죄를 인정하려 들겠는가?"

 

 죄는 확실히 나쁘다만 반성하고 무릎을 꿇는 사람을 끝없이 짓밟는 일 또한 옳지 않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궁지에 몰린 인간은 무슨 일을 저지를 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최악'이 탄생한다.

 

 이들은 선과 악은 모두 인간이 만든 것이고 사회가 나쁜 것이라며 합리화한다.

 자신의 악행을 왜곡하고 자기변명만 늘어놓는다.

 

 마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처럼

 

 

 

 

정리

1. 누구든지 상황에 따라 죄를 저지를 수 있다.
2. 누구든지 벼랑 끝에 몰리면 악마로 변한다.

 

 예수는 이 두 가지를 진정으로 알았기에 모두를 품어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방식이 범죄자들이 양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오히려 괴롭다.

 

 위에 다루었듯 '최악'은 위선이다. 하지만 예수의 방식은 죄를 인정하고 뉘우쳐야하며 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살아가야한다.

 

 "그럴 수 있지."가 아닌 "다시는 그래선 안된다."에 가깝다.

 

 비종교인도 마찬가지다.

 예수는 그저 행동지침을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나를 안 믿어도, 내가 하는 일은 믿어라.

요한복음 10:38

 

 현대 사람들은 분노로 가득차있다. 그리고 그게 식기 전 또 다른 분노로 집어삼켜진다.

 

 우리는 그렇기에 세상을 반 쪽밖에 보지 못한다. 입체적이고 전체적으로 보고자 한다면 우리는 용서와 이해도 동시에 행하여야한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라. 이게 성경의 핵심이다.

마태복음 7:1, 누가복음 6:37, 41

 

 

 이렇게 좋은 인물을 우리는 왜 오해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 예측이지만 몇몇 기독교인들이 그저 예수를 믿기만하고 선한 사람으로만 보기 때문일 것이다.

 

 반지성 주의집단, 사이비 집단 또한 공부하려 들지 않고 그저 믿기만하기 때문에 합리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 입장에게 혐오를 사기 쉽다.

 

 다만 복음을 조금만 읽어봐도 예수가 이런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고 기독교인을 만나다보면 대다수의 인물이 저렇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코멘트

 나는 약 10년간 학창시절 내내 교회를 다녔다.

 

 하지만 당시 나이를 먹을 수록 예배에서는 이해가 안되는 내용의 설교가 많았지만 아무튼 믿어야한다 분위기가 혐오스러웠다.

 

 본문의 내용처럼 오랜 시간 교회를 다니며 많은 역할을 한 사람도 성경의 내용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냉혹하게 뒷말이 나오는 부분 또한 너무 싫었다.

 

 교회를 가서 예배로 인해 감명받는 부분보다 위와 같은 일로 기분이 나빠지는 일이 잦았다.

 

 뿐만 아니라 목사님께 '왜'라는 질문은 했어도 명쾌한 답변은 얻지 못했고 내가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으니 자연스레 성경과 교회에 점점 멀어졌다.

 

 이후로 왜인지 사람과 어울리는 일은 점점 적어졌고 근래 들어서는 이용하려는 목적만 가득했던 것 같다.

 

 이 영상이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다음 내용이 '신으로서의 예수'라는데 참으로 기대가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SR3CWvY_L1E&t=8s

#너진똑

#예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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