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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완전판(세계 최초)해석편

동영상(지식정보 전달)/너 진짜 똑똑하다

by 세상 온갖 잡지식 2023. 12. 2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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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진짜 똑똑하다

 

 

https://beanknowledge.tistory.com/263

 

데미안 완전판(세계 최초) Story편

너 진짜 똑똑하다 데미안을 읽은 독자는 십중팔구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동성친구가 좋다는 둥...결혼한 아줌마가 좋다는 둥..충격과 공포로 가득 찬 내용으로 전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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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신 분은 위의 글을 읽고 오시면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우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데미안을 다 읽었는가? 읽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뭔가 엄청난 철학적 의미가 담겨있는 거 같은가?

 

 솔직하게 말해봐라. 어지럽지 않은가?

 

 '이딴 게 고전....?'

 

몇번이고 책을 읽어보아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양성애와 밀프성애를 다루는 이상 성욕소설인가?

K-마케팅과 BTS가 올려친 물거품 소설인가?

 

 <데미안>은 독자에게 난해함을 준다는 것이 최대 감점 요소이다.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는 칼 융의 제자에게 오랜 기간 심리 치료를 받으면서 분석 심리학에 대해 접하게 된다.

 

 그것에 상당히 감명을 받아 분석 심리학에서 얻은 지식과 깨달음을 <데미안>에 되는대로 집어넣었다. 그러다보니 분석 심리학을 모르면 100%이해를 할 수가 없는 책이 되어버렸다.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지 않은가? 사전 지식이 필요한 문학이라니, 분석 심리학은 의대에서 배우니 더더욱 진입 장벽이 높다. 그래도 모든 곳을 찾아봐도 자료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에 의욕이 생긴 난 한 달 가까이 도서관에서 융 폐관 수련을 했다.

 

 그리고 <데미안>을 다시 정독해보니 <데미안>은 우리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로 치밀한 책임을 깨닫고 말았다.

 

이제 내가 깨달은 것에 대해서 하나하나 설명해주도록 하겠다.

 

 

 

 

 

 

내용이 난해한 이유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을 썼을 당시, 자신의 이름이 아닌 신그래(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출판했다. 이 책이 경험담처럼 보였으면 하는 이유였다.

 

 근데 조금 이상하다. 경험담이라고 느끼는 걸 원했다기에는 너무나도 내용이 비현실적이다. 대체 왜 경험담처럼 보이길 원하면서 비현실적으로 쓴걸까?

 

이 이야기를 '신그래의 꿈 이야기였다'라고 한번 가정해보자. 그럼 좀 난해한 이유가 설명이 되는가?

 

 

 분석 심리학의 핵심 기술은 '꿈'의 분석이다. 이건 해몽과는 다르다. 그건 정답을 정해놓고 운수를 점치는 행위이다. 그에 반해 이건 원리에 대한 분석이다.

 

 만약 당신이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다고 해보자. 그런데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겉으로는 뭐가 문제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의사는 상태가 호전되기를 그저 기다릴 것인가? 내과 의사는 대장내시경을 통해 어디가 터진건지, 피가 나는지 꼼꼼히 살펴볼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경우는 어떨까? 마음은 무의식의 영역이다. 무의식은 물리적으로 확인할 수가 없는 부분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조금이라도 무의식이 남긴 흔적들(일상생활의 행동, 그림에 대한 감상)을 보고, 무의식이 의식적으로 나타나는 '꿈'도 분석해보아야할 것이다.

 

 그것이 현대에서 쓰여지고 있는 방식이다. 그러니 <데미안>의 내용은 신그래가 자신의 무의식을 탐험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될 것같다.

 

 

 데미안의 스토리는 무의식 분석의 흐름과 완전히 같은 전개이다. 사회적 위기를 마주하게 되며 어른이 된 신그래는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게 되고, 그는 어린 시절의 꿈을 꾸게 된다.

 

 무의식 탐험의 초반부는 보통 개개인의 실제 경험으로 재현이 되기 때문이다. 부모님, 누나, 일진, 선생님 등 내가 살아오며 만나왔던 이들을 전부 만난다. 그러다가 무의식의 탐험이 막바지에 이르게 되면 내용은 점점 현실성 없고, 신비로운 것들과 마주하게 된다.

 

 데미안 엄마, 아브락사스, 신..뭐 이것저것 나오지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등장인물보다 중요한 개념은 이 모든 인물이 신그래의 '마음 속'에 나오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즉, 모티브가 된 모델이 있긴 하지만 결국은 그 모든 인물이 '신그래' 자기자신이다.

 

 

 

 

변태같은 나도 나임을 인정해라

 

 마지막 장면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주인공의 이름이 여러 개 쪼개지지 않았는가? 이건 우리의 마음속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예전 영상에서 우리 마음 속에는 다양한 '나'가 살고 있다고 한 적이 있다. 똑똑하면서도 멍청하면서도 비위를 맞추는 등 다양한 '나', 페르소나가 존재한다. 그리고 시간과 장소에 맞춰 다양하게 '나'가 튀어나온다.

 

 이 중 우리가 모르는 '나'도 엄청나게 많다. 이들은 무의식 속에 숨어 지내기에 알아채기가 어렵다. 무의식에서 중점이 되는 '나'는 그림자이다. 그림자는 흔히 '나쁜 나'라고 보면 된다. 그림자에는 쪼잔, 찌질, 변태, 난폭, 본능적인, 문명사회에서 온갖 이유로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그런 '나'가 내제되어있다. 물론 밖에서 이 친구들을 볼 일은 많지 않다. 그 누가 쪼잔, 찌질, 변태~~~처럼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을까?

 

 

'아, 엉덩이 만지고 싶다~~~'

'어, 미친 내가 무슨 생각을 한거지'

 

 

 그림자의 '나'가 튀어나오면 우리는 바로 그것을 억누르려한다. 신그래는 이게 더 극단적으로 나타나있다. 엄격한 집안에서 자라왔기에 그림자를 항상 무의식 속에 숨겨와서 자기 안에 그림자가 있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했다(홍등가에서 느끼는 이상야릇한 감정). 하지만 여기는 현실이 아닌 싱그래의 마음속이다보니 여태 인식하지 못했던 그림자와 마주하게 된다. 그림자는 정해진 모습이 아니다.

 

 

 개개인의 머릿속에 있는 개념들에 따라 그 모습이 다르다. 누군가에겐 물건이기도, 동물이기도, 일진이기도 하다. 그렇다. 싱그래를 괴롭힌 그 무리, '일진'이 그림자였다. 하지만 그들은 퇴장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림자는 사라진 걸까? 그들을 쫓아낸 이를 생각해보자. 그림자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일진에서 데미안으로 바뀌었을 뿐이다(데미안을 보면 홍등가에서 느낀 이상야릇한 느낌을 받곤 했다).

 

 

 

 

데미안의 정체

 

 앞서 그림자가 사람에 따라서 각기 다른 형태로 나온다고 했지만, 인류에게 전형적으로 자주 나타나는 상징도 있다. 그에 대한 예시로는 '악마'가 있다. 영어로 Demon(데몬), 그리스어로 Daimon(다이몬)...뭔가 익숙하지 않은가? 그렇다. 헤세의 꿈에서 나타나기도 했다는 '데미안'은 악마가 모티브가 된 캐릭터이다(걔랑 이야기할 때면 악으로 유혹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독자는 이상함을 느낀다. 신그래는 데미안이 '악'이다. 어마무시한 호들갑을 떨었지만, 공감이 되지 않는다. 고고하고, 시크하고, 강력한 좀...멋있는 캐릭터같지 않은가? Daimon(다이몬)은 사실 악이기 전에 초월자, 구도자를 뜻하기도 한다. 데미안은 신그래가 가진 '악의 개념'을 죄다 깨부순다. 신그래는 어른에게 반항하는 것 같은 행동을 악이라고 규정짓고, 그것에 반항하는 데미안을 보고 충격받는다.

 

 

 사실 반항은 창조의 원천이다. 인류가 세상의 질서에 순응하기만 했다면, 아직도 우리는 4원소설을 믿고("반증가능하지 않은 주장은 과학적 주장이 아니다"-칼 포머) 전염병을 막기 위해 인신 공양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독재에 저항하지 않고, 노예가 존재하는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 불합리하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악'이라고 배웠던 반항심은 사실 사회를 발전시키는 최대의 '선'이 될 수 있다.

 

 이제 작품의 교훈이 좀 감이 오는가? 세상에는 무조건 악이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리라는 것이다(우리는 악을 감춰서는 안 돼).

 

 우리는 때로 완고하게 믿던 사상, 종교, 신념이 부숴지는 경우가 생긴다. 믿고 있던 인물이 뒤에서는 나쁜 짓을 했다던가, 옛날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이 사실은 완전히 틀린 말이었다라던가라는 등의 의심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구분 짓지 못하게 하고 기존에 세워져있던 나를 부순다. 이후 새로히 건물을 세우게끔 한다.

 

 

 

 

 

'악'을 받아들여라

 

 이 말을 정말 귀가 닳게 들었을 것이다. 마치 몇년 전 데미안을 해설했던 나처럼 말이다. "악을 받아들여라", "선악의 통합"을 단편적으로 이해한 사람은 '부의 xx차선'같이 악이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을 하게 되고, 선이나 기존 세계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항을 하게 된다.

 

 

'남들이 시키는 대로 하다니, 대중은 정말 바보구나!'

'세상은 틀렸다. 내가 맞다!'

 

 

 이건 올바른 이해가 아니다. 선을 악으로 보내고, 악을 선으로 보낸 후에 또 다시 새로운 악을 배척하며 자기를 기만하는 행위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사회의 질서가 그렇게 녹록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마치 중학교 때 밤새 술을 마시고, 맘껏 토하고, 하고 싶은 대로 살다가 현타가 온 신드래처럼 말이다(하고 싶은 것을 전부 하면서 사는 데도 참담한 기분만이 느껴졌다).

 

 

 반항이 아무리 창조의 원천이라고 해도 인류를 개밥으로 보면 곤란하다. 당신이 보고 있는 스마트폰, 의자, 옷, 지식 등이 그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냥 어른의 말을 듣는 건 최악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악은 '악'일 때가 많으니 말이다. 희대의 살인범이 TV에 나와

 

 

"제가 한 살인이 정말 '악'일까요? 그저 세상이 정해놓은 법이 아닐까요"

"선악의 개념에서 벗어납시다. 여러분!"

 

 

 라는 개소리를 짓껄이는 사회가 도래한다면 어떠할까?

 

 <데미안>의 스토리로 돌아와보자. 데미안이 신그래의 그림자라고 하지만 원래 그림자는 일진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정말 우리가 아는 '악'에 어울리는 행동들을 해온다.

 

 이 작품이 정말 모든 악을 받아들이라는 내용이었다면 범죄를 저지르고 폭력을 일삼는 일진들까지 받아들여야한다. 하지만 데미안은 신그래에게 악을 받아들이라고 조언하면서도 작품내내 그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우리는 선악을 합치는 참목적을 이해해야한다.

 

 

 

'나'가 알려주는 답안지를 따라가라

 

 융은 우리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self라는 '나'가 있다고 했다. self는 우리 인생의 기준, 답안지로 이끌어주는 구도자 역할을 해준다. 정답을 알려준다는 사실에 반향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대체 누가 정답을 알려준단말인가?

 

 회사의 디자이너 차관님이 최근 태어난지 얼마 안 된 고양이를 주워왔었다. 어머니의 손길 대신 인간의 손길을 훨씬 많이 탄 녀석인 것이다.

 

 근데 신기하게도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배변을 보고 모래로 덮고, 그루밍으로 몸을 깨끗이 하고, 기분이 좋으면 골골거린다. 당연한 이야기같지만 신기하다고도 느껴지지 않는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정말 고양이다운 행동을 자연스럽게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완전한 백지에서 인생이 시작된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우리는 고대 시대에도 무리를 짓고, 결혼을 하고, 종교를 만들고 우두머리를 세웠다. 그렇다고 다 똑같이 대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같은 환경에서 자라도 누군가는 예민하고 누군가는 둔감하다. DNA, 선천적인 환경 등은 고정된 '나'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사람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본질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고양이에게 배변을 둘 때 모래에 못 누게 하고, 골골거리면 물을 뿌리고, 그루밍할 때 소리를 지르면 어떨까? 미쳐돌아버릴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무리에서 배척당하고, 결혼과 육아를 배척하고, 삶의 굳건한 신념과 믿음을 잃는다면 우리 스스로 미쳐돌아버릴 것이다. 우리 사회는 종종 독수리에게 바다를 헤엄치라고도 하고, 돌고래에게 하늘을 날라고도 한다. 정말 멍청한 짓임을 알면서도, 우리 사회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왜냐면 우리 사회는 누가 독수리고 누가 돌고래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독수리가 많으면 그냥 하늘로 가라고 하고 돌고래가 많으면 바다로 가라고 안내하는 방식을 택했다. 인류가 긴 시간 살아오며 이렇게 사는 것이 사회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체로 다수에 속할 확률이 높으니까 이는 효과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다수에 속할 수 없다. 어쩔 때는 나와 안 맞는 룰을 따라야할 경우가 생긴다. 그래도 뭐.. 규칙을 지키지 않아 왕따를 당하는 것보다는 훨신 낫다. 그냥 내 그림자를 억누르기만하면 된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라 선과 악을 구분하여 '악'에 속하는 '나'들을 무의식으로 숨긴다.

 

 근데 그 '나'가 많아지고 강도와 시간이 심해질수록 '나'들은 날뛰고 우리의 무의식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억누르는데 에너지를 사용해서 평소의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아...한 것도 없는데 피곤하네. 왜 이렇게 일이 하기가 싫지). 아무 이유없이 기분이 나빠지기도 하고 정말...정말 쌓이다보면 자해, 극단적 선택으로 표출되어질 수 있다.

 

 엄격한 가정에서 자란 신그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악을 억누르다보니 정신이 피폐해졌고, 결국 꿈 속에서 나타나 신그래를 괴롭히고 주도권을 빼앗았다.

 

 내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일진도 가두지 말고 일단 죄다 꺼내, 욕망을 표출하며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우선시하라는 뜻일까? 그건 이제 self가 알려줄 것이다. self는 데미안이다. 데미안은 그림자이기도 하고 self이기도 하다. 융은 고도로 발달한 그림자는 self와 구별할 수 없다고 했다.

 

 

 

 

 

선악을 통합하는 방법

 

 데미안이 겨우 조언 몇개하고 키스한 거로 self라고 하려는 것이 아니다. 데미안은 그 존재 자체로 통합에 대한 힌트를 강하게 던져주는 존재이다. 신그래는 지금까지 억압된 악만 만나왔기에 악에 대해 오해할 수 밖에 없었다. '악'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것은 악을 통합한 게 아니라 악에 잠식당한 것이다. 그저 악을 받아들인 척하는 연기에 지나지 않는다.

 

 선악의 통합은 마치 별의 커비와 같은 것이다. 포켓몬을 보면 포켓몬을 잡아서 적기에 사용하고, 종종 적을 동료로 삼는 스토리가 진행되기도 한다. 그에 반해 커비는 적을 삼키고 그 계열의 능력을 쓴다. 삼킨다고 몬스터가 되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기술을 쓰지도 않는다. 온전히 자신의 개성으로 사용한다. 적을 삼키고 칼을 들고, 얼음, 전기 능력을 쓸 수 있게 되더라도 커비는 커비로 존재한다.

 

 그러니 나쁜 말을 퍼붓고, 남을 함부로 대하는 건 통합이 아니다. 그저 일진에게 몸을 빼앗기는 것에 가깝다. 일진에게 몸을 빼앗기면 사람들은 당신을 떠난다. 내가 여러 영상에서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렇다고 굳이 미움받을 필요가 있을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굳이 미움받으려는 행위는 독수리에게 헤엄치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그렇다면 통합을 어떻게 하는가? 데미안처럼 하면 된다. 그는 악을 폭력과 갈취가 아닌 창의와 용기로 보여주었다.

 

 

 

 모든 가치는 양면의 동전과 같다. 예민은 감각으로 이어지고 분노는 용기로 이어지고 오만은 자신감이 되기도 하며, 충동은 결단이 되기도 한다. 악이라고 억압하지 않고 온전히 마음으로 받아들인 '나'들은 더 이상 악으로 남지 않는다. 선악에 피안에 서서 내면을 성숙하게 통합한다면 도달하는 결과이다.

 

 이게 바로 여러 종교에서 말하는 초월이다. 모든 나를 하나로 통합하여 온전히 드러내는 상태

 

 

 이게 가능하다면 우리는 어떤 나든 미워하고 질타하지 않게 된다. 그런 당신을 보고 주변 사람은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이라며 좋아할 것이다. 현 시대에 들어서 다양한 이념이 생기고 우리는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선으로 두게 되는 순간 악이 되어 억압당하는 내가 생긴다는 사실을 떠올려라.

 

 살다보면 정말 생각대로 일이 안 풀릴 때가 많을 것이다. 사고와 불행은 언제나 이럴 때 겹겹이 찾아온다. 그럴 때 악들이 찾아오면 기회로 여기고 한번 제대로 마주해보아라. 스스로를 정말 사랑하고 있는지, 잠재력을 100%사용하고 있는지.

 

 

 

정답은 분명 우리 안에 존재한다

 

#너진짜똑똑하다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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